안녕하세요, 지혜롭고 건강한 일상을 가꾸는 수기입니다. 🌿
갱년기가 오면서, 친한 친구와 전화로 신나게 수다를 떨 때의 일입니다. 한참 재미있게 보던 드라마 이야기를 하다가 제가 흥분해서 말을 꺼냈지요.
“얘, 친구야! 너 그 주말 드라마에 나오는 그 남배우 기억하지? 키 크고 예전에 그 멜로 영화에서 그 멋있게 나오던 그 사람 말이야! 이름이 뭐였더라?” “아~ 그래! 나도 아는데! 맞아 맞아, 그 사람 있잖아! 그거!” “맞지 맞지? 그래, 바로 그거!”
저희는 서로 너무나 열정적으로 대화를 이어갔습니다.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참 웃기지도 않더군요. 대화가 시작되고 끝날 때까지 정작 그 배우의 ‘이름’이나 영화 ‘제목’은 단 한 번도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습니다. 오직 ‘그 사람’, ‘그거’, ‘그 영화’, ‘그 옷’이라는 대명사만 공중에 둥둥 떠다녔는데, 또 희한하게 친구는 그걸 찰떡같이 알아듣고 깔깔거리며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 아니겠어요?
그때는 둘이 빵 터져서 한참을 웃었습니다. 그러면서 어떻게 단어가 하나도 생각이 안나지? 하며 서로 위로도 해주고 서로 웃기도 했습니다.
‘아니, 내가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안 그러지 않았나? 어떻게 배우 이름 하나가 머릿속에서 뱅뱅 돌기만 하고 끝내 안 떠오를 수가 있지? 내가 벌써 이렇게 건망증이 심해진 건가? 이러다 건망증이 심해지면 어떻게 하지…?’ 많이 속상했어요.

아, 그래서 그랬구나! 내가 몰랐던 내 뇌의 사정
그렇게 마음을 다스리려 관련 자료를 찾아보고 의학적 내용을 공부하다가, 비로소 제가 제 몸에게 너무나 미안한 오해를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.
머릿속에 안개가 낀 것처럼 단어가 바로 생각나지 않는 이 현상을 의학적으로 ‘브레인 포그(Brain Fog)’ 또는 ‘갱년기 인지기능 변화’라고 부른다고 합니다.
우리가 단어나 이름을 기억하고 꺼내는 뇌 속 서랍장인 ‘해마’에는 여성호르몬(에스트로겐) 수용체가 빼곡히 들어차 있습니다. 그동안 에스트로겐은 해마의 신경세포들을 부드럽게 이어주고 혈액을 공급하며 서랍장에서 단어를 잽싸게 꺼내주는 열쇠 역할을 해왔던 것이지요.
그런데 갱년기가 되어 호르몬이 불규칙하게 흔들리다 보니, 뇌 속 서랍장에서 원하는 ‘단어’라는 서류를 신속하게 찾아오는 열쇠가 잠시 뻑뻑해졌을 뿐이었습니다.
더군다나 단어가 생각나지 않아 “그거 있잖아!” 하다가도 나중에 “아, 성현철이었지!” 하고 스스로 떠올리거나 힌트를 들었을 때 기억해 낸다면, 그것은 기억 자체가 삭제된 치매가 아니라 단지 ‘출력 속도’가 잠시 느려진 건망증일 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.
‘아… 내 뇌가 나를 버린 게 아니라, 호르몬 파도 속에서 적응하느라 잠시 애를 쓰고 있었던 거였구나.’ 그 사실을 알고 나니 마음속에 소용돌이치던 서러움과 미세한 두려움이 사르르 녹아내리며 내 몸에 대한 안도감과 미안함이 피어올랐습니다.
나의 단어를 지키고 뇌를 다독이는 수기의 소소한 일상 루틴
그날 이후로 저는 단어가 생각나지 않는 나 자신을 자책하거나 슬퍼하는 대신, 내 뇌가 차분히 단어를 찾아올 수 있도록 기다려주는 정성스러운 습관을 시작했습니다.
- “그거” 하고 넘어가기 전에 5초만 기다려주기: 친구와 대화하다가 단어가 막히면 무심코 “그거 있잖아” 하고 넘어가기보다, “어라, 잠시만! 그 단어 뭐였지?” 하며 5초간 차분히 단어를 찾아보는 여유를 가집니다.
- 매일 나만의 블로그에 정갈하게 글 쓰기: 아이디어를 생각하고, 글을 쓰는 행위가 뇌를 부드럽게 깨워주는 최고의 영양제라는 것을 몸소 체감하고 있습니다.
- 마음을 가라앉히는 깊은 횡격막 호흡: 머리가 멍해질 때는 어깨의 힘을 풀고 코로 숨을 깊이 마시고 천천히 내뱉으며 뇌에 맑은 산소를 선물합니다.
단어는 잠시 머뭇거려도, 우리의 삶은 더 깊어집니다
어느 날 갑자기 내가 자주 쓰던 단어들이 혀끝에서만 맴돌고 잘 떠오르지 않을 때, 이웃님들도 가슴이 덜컥 내려앉으신 적이 있으실 겁니다. 하지만 그것은 결코 우리가 늙고 무력해져서가 아닙니다. 지난 세월을 온 힘으로 지탱해 온 내 몸과 뇌가 새로운 계절에 적응하기 위해 잠시 숨을 고르고 있는 정직한 과정일 뿐입니다.
단어 이름 좀 바로 생각 안 나면 어떤가요? 정확한 명칭 하나 없이도 “그거 있잖아” 한 마디에 내 마음을 다 알아주고 함께 깔깔거리며 웃어줄 수 있는 소중한 친구가 곁에 있고, 세월이 준 단단하고 깊은 삶의 지혜가 이미 내 안에 가득한걸요.
단어를 잠시 빼앗겨 서러웠던 갱년기의 어느 날, 저는 오히려 내 몸을 더 깊이 이해하고 따뜻하게 안아주는 법을 배웠습니다. 오늘 밤은 내 머릿속 안개를 지워내려 애쓰기보다, 오늘 하루도 참 고생 많았던 나 자신에게 “괜찮아, 조금 천천히 떠올려도 돼” 하고 정갈한 위로 한 마디를 건네보시는 건 어떨까요? 이웃 여러분의 우아하고 평온한 하루를 늘 온 마음으로 응원합니다! 😊
※ 안내 문구: 본 글은 갱년기 여성의 생리학적 인지기능 변화에 대한 경험과 일반적인 건강 정보를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. 만약 일상생활에 심각한 지장을 줄 정도의 기억력 저하가 지속되거나 방향 감각 상실 등이 동반되는 경우에는 전문 의료진의 정확한 평가를 받아보시는 것이 좋습니다.